엽문 - 주먹은 총보다 강하다


별 기대는 없었다. 흐아합, 챠합, 크헉, 따꺼! 4마디로 요약이 가능한 중국산 무협영화. 까놓고 말해 남성용 킬링타임 영화라는 것, 단지 그런 생각 뿐. ‘엽문’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3류 영화의 오오라는 검색창에 단 두 글자를 치는 것 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요컨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는 것도, 엽문이 이소룡의 스승이었다는 것도 몰랐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1인분에 1000원짜리 삼겹살을 파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 만큼이나 시큰둥한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엽문과 그의 제자였던 이소룡



엽문은 비단 그저 그런 ‘중국무술영화’는 아니였다. 중국의 해학이 담겼고 역사의 내면이 상처가 되어 남아있었다. 20세기가 되어서도 자긍심 하나만으로 무술의 불씨를 연명하던 불산의 무술인. 그들은 일제강점기가 되자 광산이나 목화 공장 등지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 하루 연명하는 끄나풀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 시대의 무술이란 한낱 시들어버린 로맨스, 도태된 자들의 망상, 헤게모니 속 허용되지 않는 이데올로기의 불과했다.

엽문도 예외는 아니였다. 무술인의 도시 불산에서 가장 강한, 불산의 자존심인 그도 일본군의 장총 앞에서는 수련용 목각인형처럼 무력한 무생물이 되어야만 했다. 가족에게 줄 고구마 반 쪽을 지니고 터벅터벅 귀가하는 길에 스쳐가던 위풍당당한 일본군의 군용차는 그래서 더욱 안쓰러움이 곁든다. 아마도 한국인이기에 가능한 공감대일 게다. 가슴 속 깊은 응어리가 한이 되었을 때만 나타날 수 있는 군상들의 표정과 몸짓. 해묵은 무술로 그들을 수호하려 했던 엽문은 아마도 비굴함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우리 조상의 모습이 아닐런지.

일명 앞잡이로 불리는 친일파도 엽문에서는 새로운 각도로 조명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앞잡이인 리소는 그야말로 생계형. 통역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패댕겨쳐지고 모욕을 당하지만 리소는 어금니를 갈며 나지막한 일본어로 “빠가야로”라 읊조린다. 엽문 앞에서 중국어로 “나는 중국인이다!”라고도 외쳐보지만 메아리쳐 돌아오진 않는다. 죄책감이 스물스물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그는 중국인을 위해, 엽문을 위해 살기 시작한다. 그의 죄책감은 기어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숭고함으로 승화된다. 일본군 장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그의 손가락은 아마 세계 최고 피아니스트의 손가락보다도 경쾌했을 것이다.

옛 말에 주먹보다는 총이 쌔다 했다. 엽문은 총 앞에 무술을 통해 소통했다. 그리고 일장기가 하늘을 덮은 단상 위에서 그의 손은 말했다. 주먹보다는 보자기가 더 쎄다고.


주먹


보자기



by 미타민 | 2009/04/17 14:27 | 팝콘 좀 드세요 | 트랙백(3)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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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지니 at 2009/04/18 18:12

제목 : 엽문
최고네여^^...more

Tracked from 지니 at 2009/04/18 18:14

제목 : 엽문
...more

Tracked from Pell's seer .. at 2009/05/01 16:31

제목 : 엽문葉問 (2008)
Ip Man (2008) 을 보고왔다. 이후 견자단을 좋아했지만 그간 실력에 비해 좀 폄하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드디여 그만의 영화가 나왔다. 영화속에서 날것의 액션을 그대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복원시켰다라고 할수 있다. 견자단이 영화속에서 상대배역들과 한치의 틈도없이 정확하게 계획된 몸짓을(마침 환상적이 춤같은) 보면서, 그 격렬한 부딪침의 소래를 들으며 오랜만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정말 반가운 영화였다.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엽문과.....more

Commented by 러브햏 at 2009/04/17 15:53
그럼 찌가 최고네?
Commented by 븅아 at 2009/04/18 01:25
찌는 묵한테 지잖아;;;;;;
가위바위보 몰라? ㅎ
Commented by 미타민 at 2009/04/18 10:40
감히 러브햏한테 븅이라니 방법해버린다?
Commented by 앞치마소년 at 2009/04/17 22:03
근데 실제로는 일본군이 아니라 중국 공산군에게 쫓긴거였죠. 중국의 '문화대혁명'시기에 무술도 탄압의 대상이었다고 하네요.
Commented by 미타민 at 2009/04/18 10:44
일본군에게 억압받고
공산군에게는 쫓기고
순탄치 않는 인생임은 분명하군요 ㅠ
Commented by 키마담 at 2009/04/17 23:01
지금 계시느 곳에서도 개봉한건가요?
전 요새 최신 영화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네요 ㅠ0ㅠ 저도 극장 가고싶어여~~엉엉
그래서 최근에는 메가패스 사이트에서 제공받는 무료 영화나 보고있습죠 ㅋㅋ
Commented by 미타민 at 2009/04/18 10:45
미국에서도 개봉했답니다 ㅎㅎ
요즘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 많던데 공부도 좋지만 문화 생활을 즐기세요! ㅋㅋ
Commented by ㅋㅋ at 2009/04/18 01:24
보자기의 승리 ㅋㅋㅋ 很有道理啊~
Commented by 미타민 at 2009/04/18 10:45
죄송합니다. 한자는 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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